이름 : 노을 
제목 : [스파이더맨2]영웅주의와 민주주의ƒ불행한 영웅„은 [스파이더맨 2]의 핵심적인 모티브다.그 모티브는 낯설지 않다.최근 영화들 속의 현대적인 영웅들은 모두 그렇다.특히 만화 캐릭터로 태어난 영웅들은 그렇다.DC의 배트맨으로부터 마블의 엑스맨,이미지 코믹스의 스폰,그리고 마블의 또 다른 작품 중 하나인 헐크와 이 스파이더맨.불행한 영웅은 전부터 드물지 않았다.그리스 신화나 로마 신화 속의 영웅들도 불행했다.그들의 이야기는 비극‚이 되었고 그들은 비극적 영웅‚이 되었다.
비극적 영웅은 파멸하는 영웅이다.영웅은 무엇으로 파멸하는가.고대의 영웅들은 그들의 운명으로 인해 파멸한다.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운명 때문에 파멸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고대 비극의 전형이다.실존했던 영웅들을 파멸케 했던 것도 운명이었다.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를 멈추게 했던 것은 모두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그들은 적 때문에,그들의 능력으로 제압할 수 없는 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었다.브루투스를 카이사르와 비교할 수는 없다.그는 카이사르 운명의 한 도구였을 뿐이다.체사레 보르자의 경우는 가장 비극적이다.갑작스럽게 닥친 병,그것도 그와 그의 아버지에게 동시에 쓰러뜨린 병이 아니었다면 이탈리아의 운명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현대의 영웅을 파멸시키는 것,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운명이 아니다.인간들,적이 아닌 다수의 인간들,대중이다.[엑스맨]에서 이 점은 두드러진다.엑스맨들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매그니토가 아니다.인간들,돌연변이가 아닌 모든 보통의 인간들이다.보통의 인간들을 대변하는 것이 미디어다.미디어는 당연히 영웅과 적대한다.[스파이더맨 2]에서 미디어는 한 타블로이드 신문으로 대표된다.그 신문은 스파이더맨을 악당으로 몬다.많은 사람들은 스파이더맨이 악당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신문의 기사를 믿을 것이다.
미디어는 매스-미디어다.다수의 평범한 사람들,대중이 없이 미디어는 존재할 수 없다.대중과 미디어,대중의 지배와 미디어,민주주의와 미디어는 떼어놓을 수 없다.미디어가 대변하는 것은 대중의 요구고 삶이다.그것이 충족시키는 것은 대중의 호기심이다.신문은 스파이더맨을 괴롭힌다.그러나 정작 그를 괴롭게 하는 것은 신문 자체만이 아니다.그 신문이 대변하는 평균적인 삶이다.스파이더맨과 미디어의 갈등은 영웅으로서의 삶과 평범한 삶의 갈등이고 스파이더맨과 피터 파커의 갈등이다.영웅은 미디어와 양립할 수 없다.영웅은 평범할 수 없는 자고 미디어는 평범의 대변자이기 때문이다.영웅은 대중과 양립할 수 없고,마침내 민주주의와 양립하지 않는다.영웅의 삶은 단독자의 삶이고 민주주의는 다수의 삶에 있어서의 가치다.단독자에게 민주주의는 무용하다.민주주의적 가치가 지배적인 시대에 단독자는 고립자다.스파이더맨은 고립된다.다수 속의 고립자는 불행하다.피터 파커는 행복할 수 있지만 스파이더맨은 불행하다.
반대이기도 하다.고립된 단독자이기 때문에 영웅이 될 수 있다.고대의 영웅들도 단독자였다.그러나 그들은 고립자가 아니었다.많은 인간들이 그들을 숭배했다.그 시대가 민주주의를 경멸했기 때문이다.단독적이고 예외적인 인간을 승인했던 시대,차이뿐 아니라 차별을 승인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그 시대의 영웅은 영웅이면서 인간일 수 있었다.현대의 영웅은 단독자이면서 고립자다.평균과 평등에 익숙한 인간들의 눈에 단독자이자 예외자는 낯선 자다.그들이 예외성이 인간의 평균을 넘어서는 탁월함에서 기인할 때는 더 그렇다.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적 인간에게는 힘든 일이다.단독자이자 예외자들은 고립자가 된다. 거의 비非-인간이 된다.엑스맨들은 돌연변이들이고 배트맨은 박쥐고 수퍼맨은 외계인이며 헐크는 과학자인 동시에 괴물이다.스파이더맨은 Spider-man이다.거미-인간,거미고 인간이다.이들은 모두 괴물에 가깝다.고대의 영웅은 신적인 인간이었지만 현대의 영웅은 괴물적인 인간이다.고대의 영웅은 경배의 대상이었지만 현대의 영웅은 경원의 대상이다.고대의 영웅은 대중을 이끌고 다녔지만 현대의 영웅은 혼자서 숨어 다닌다.자신을 숨기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한다.콧구멍도 없는 스파이더 마스크. 숨은 어디로 쉬나.피부로 숨을 쉰다는 택도 없는 주장도 있다.
존재의 형태에서 현대의 영웅은 악한과 크게 다르지 않다.스폰이나 엑스맨이나 헐크와 같은 캐릭터는 영웅과 악한의 경계에 있다.더 정확하게,현대 세계에서는 대영웅도 대악한도 존재하기 힘들다.존재할 수 있는 것은 기이한 것,괴물적인 것뿐이다.비범非凡은 괴물적인 것으로 여겨진다.그것이 현대의 영웅 캐릭터들이 만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이유다.
2.
탁월한 능력은 영웅의 조건이다.그러나 능력만으로 영웅이 될 수는 없다.운명이 영웅을 만든다.영웅의 운명은 세계의 운명과 일치한다.적어도 특정한 범주에서 전체의 운명과 일치한다.알렉산드로스의 운명은 마케도니아의,더 나아가 그리스 전체의 운명이었고 카이사르의 운명은 로마의,더 나아가 유럽의 운명이었고 체사레 보르자의 운명은 이탈리아의,더 나아가 주변 여러 나라의 운명이었다.물론 수퍼맨이나 엑스맨의 운명은 지구의 운명이고 배트맨의 운명은 고담시의 운명이고 헐크의 운명은 지구의 운명인 동시에 헐크의 원래 모습인 브루스 배너의 운명이고 .스파이더맨의 운명은 뉴욕의 운명이다.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 스타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개별 플레이어의 운명이 팀이나 국가의 운명과 일치하거나 연결될 때에만 그는 스타를 넘어서 영웅이 된다.지네딘 지단은 프랑스의 영웅이지만 데이비드 베컴은 스타플레이어에 가깝다.프랑스 대표팀의 운명은 항상 지단과 함께였지만 베컴의 능력이나 명성과는 별개로 잉글랜드 대표팀의 성적은 항상 그저 그랬기 때문이다.손기정은 조선의 영웅이었지만 박세리는 한국의 골프스타다.손기정의 운명은 조선의 운명과 (실제로 그러했는가와는 별개로) 동일시되었지만 박세리의 성적은 지금 남한의 운명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개별자의 운명과 일치할 수 있는 전체는 스포츠 팀 정도가 최대한일 것이다.민주주의의 시대에 개인의 운명은 전체의 운명과 더 이상 일치하지 않는다.링컨이 없었더라도 그의 역할을 할 대통령은 언제인가는 나왔을 것이고 미국의 노예해방은 언제인가는 이루어졌을 것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없었더라도 그들의 역할을 할 정치인은 나왔을 것이고 남한의 민주화는 어쨌든 진척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세계에서 개별자의 존재와 운명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에 가깝다.
*피터 파커의 숙모는 말한다.우리 모두의 안에 영웅이 있다."거짓말이다.영웅은 되고 싶다고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되기 싫다고 안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세계를 구하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세계의 운명이 그의 어깨에 걸린다.타인들을 구하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타인들의 운명이 그의 어깨에 걸린다.그러니 영웅은 세계의 운명이나 대중의 운명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자신의 운명에만 충실하다.그는 단독자다.단독자일 수밖에 없다.이것이 영웅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다.*
그가 싸우거나 살아가는 것은 세계를 위해서도 아니고 타인들을 위해서도 아니고 정의 따위의 명분을 위해서는 더욱 아니다.때로 그가 그렇게 말한다 할지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다.그는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싸우고 살아가는 것이다.그럼에도 세계의 운명은 그의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그것이 영웅의 운명이다.[드래곤볼]의 캐릭터들은 이 점을 보여준다.그 캐릭터들은 세계의 운명이나 타인들의 운명이나 정의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투사로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더 강한 적을 만나고 싸우고 이기는 것이다.굳이 덧붙인다면 가까운 소수 인간들의 운명 정도가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전부다.한 캐릭터는 직접적으로 말한다.자신은 지구를 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도가로서의 명예뿐이라고.손오공은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서 악당을 되살려냄으로써 지구를 위기에 빠뜨리기까지 한다.그래도 여전히 지구의 운명은 그들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영화 속의 스파이더맨은 정의를 말하고 책임을 말한다.그것들을 그에게 부여한 것은 누구인가.자신이다.애초에 그가 스파이더맨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은 공적인 정의와 책임 때문이 아니었다.개인적인 동기 때문이었다.삼촌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라는 동기.
*피터 파커의 숙모는 또 말한다.영웅은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도,심지어는 꿈까지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또 거짓말이다.죄책감을 덜어낸다는 개인적인 동기가 안락한 생활보다,심지어 사랑보다 스파이더맨에게는 더 중요했을 뿐이다.그는 여전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그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을 뿐이다.자신을 위해 싸우고 있을 뿐이다.자신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그래도 뉴욕의 운명이 그에게 달려있다.결국 피터 파커의 운명도 스파이더맨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운명은 아닌 것이다.그것이 영웅의 운명이다.*
실존했던 영웅들도 그랬을 것이다.알렉산드로스나 카이사르에게 마케도니아나 로마의 평범한 인간들의 운명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들의 본성과 운명뿐이었을 것이다.그들이 마케도니아나 로마를 사랑했다면 그것은 그 국가들을 자신들과 동일시 했었기 때문일 것이다.그들이 사랑했던 것은 결국 자신과 그 운명뿐이었다.그 점은 체사레 보르자에게서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그는 어떤 명분도 내세우지 않았고 자신의 행위를 선한 의도로 포장하지도 않았고 악행을 변명하지도 않았다.다만 자신이 원했던 모든 것을 가차없이 했을 뿐이다.그는 알렉산드로스나 카이사르와는 다르게 전대미문의 악한으로 평가되었다.그러나 당신의 평범한 인간들에게 알렉산드로스나 카이사르나 체사레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그들은 모두 정복 욕에 불타는 군주들이었을 것이다.백성 개개인의 목숨에는 털끝만큼의 관심도 없는 전제군주나 유사 군주들이었을 것이다.그러나 싫든 좋든 범인凡人들의 운명은 폭풍 같은 그들의 운명에 휩쓸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당시의 대중이 오늘날의 대중처럼 자신의 운명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인가?알 수 없다.어쨌든 민주주의나 평등이라는 당시에도 있었지만 그들이 짓밟았던 가치가 아니다.현대의 발명품일 뿐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 등장하는 이순신도 그러하다.그는 왕조의 운명에도 휘하 병졸들의 운명에도 백성들의 운명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그는 부하들을 가차없이 베었고 때로 백성들에게 가혹했다.심지어는 조선의 운명에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다만 싸워야 했으므로 싸웠다.조국을 말하지 않았고 백성을 말하지 않았다.묵묵히 싸우고 싸웠다.그가 따랐던 것은 무장으로서의 자신의 운명,칼의 운명뿐이었다.그래도 그의 칼의 운명은 조선의 운명이었다.
영웅은 무책임하다.세계와 타인에 대해서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있다면 자신에 대한 책임뿐이다.그가 산 것은 그의 삶일 뿐이기 때문이다.그는 무책임해서 무구하다.그는 되고자 해서 영웅이 되지 않았다.영웅으로 태어났을 뿐이다.누구도 그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다.
*영화 속에서 피터 파커의 삼촌은 말한다.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이것도 거짓말이다.큰 책임을 지울 권리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숙모도 삼촌도 거짓말만 한다.이 부부는 입만 열면 뻥이다.구라 부부.이런 부부 밑에서 컸으니 피터 파커가 자신에게 허위적인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피터 파커도 스파이더맨이 되었을 뿐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자신의 운명을 살았을 뿐 영웅으로 살고자 하지 않았다.*
히틀러나 박정희의 운명은 독일과 남한에,심지어는 유럽과 한반도에 아직도 옅지 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그들은 단독자였는가?그들은 다만 자신들의 운명을 밀고 나갔을 뿐인가?
평범한 인간은 항상 자신의 불행을 책임져 줄 누군가를 원한다.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질 능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에 책임을 떠넘길 누군가를 원하는 것이다.지구의 위기는 엑스맨들의 탓이고 고담시의 혼돈은 배트맨의 탓이고 뉴욕의 난동은 헐크의 탓이며 뉴욕의 소란은 스파이더맨의 탓이다.물론 독일과 남한의 비참은 히틀러나 박정희의 탓이다.
그러나 오늘날 누구도 히틀러나 박정희만을 전적으로 탓하지 않는다.대중이 그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프롬의 저작들이나 임지현의 우리 안의 파시즘‚은 그런 인식의 이론적 표현이다.그 이론들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대중의 지지가 없었다면 그 독재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리라는 것은 사실이다.히틀러나 박정희는 단독자가 아니었다.대중이 책임을 떠넘길 수 있을 만큼 큰 인간이 되지 못했다.심지어 악한도 못 된다.악한은 악한 자가 아니다.책임을 영웅과 나누어 떠맡는 자다.지구의 위기는 선한 엑스맨들과 더불어 악한 엑스맨들의 책임이고 고담시의 혼돈은 배트맨과 더불어 조커나 펭귄의 책임이고 미국의 난동은 헐크와 헐크를 뒤쫓는 군대의 책임이고 뉴욕의 소란은 스파이더맨과 더불어 닥터 옥토퍼스의 책임이다.영웅의 운명이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듯이 악한의 운명도 세계의 운명을 결정한다.세계의 운명은 둘의 싸움에 의해서 결정된다.악한은 영웅과 다르지 않다.악한의 존재양식은 영웅의 그것과 유사하다.그래서 많은 경우에 영웅을 이해하는 자는 악한뿐이다.많은 영웅들은 진정한 악한,진정한 적을 만났을 때 기뻐한다.[드래곤볼]의 손오공은 강한 적을 만날 때마다 기뻐하고 그 적들 대부분은 친구가 된다.영웅은 범인들 틈에 있을 때 불행하고 적과 함께 있을 때 즐겁다.*적은 무조건 증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천박한 정신이다.*
평가하는 자의 관점,시대의 정신이나 대중의 정서에 따라 영웅은 악한이 되고 악한은 영웅이 된다.알렉산드로스나 카이사르는 고대인들에게는 영웅이었겠지만 현대인들에게는 무자비한 전제 군주이거나 유사군주다.체사레 보르자는 현대인들에게 악한의 전형이지만 마키아벨리에게는 이상적인 군주의 전형이었다.정확히 말하면,현대인들에게는 영웅이나 악한이나 모두 괴물에 가깝다.선한 엑스맨들이나 악한 엑스맨들이나 돌연변이들일 뿐이고,박쥐나 펭귄이나,거미나 문어(octopus)나 짐승이고 헐크 역시 사고로 인한 배너 박사의 순수한 분노의 결정체이자 괴물일 뿐이다.그나마 인간이 친근하게 느낄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박쥐,펭귄,문어,거미,괴물.이게 뭐냐?보양식도 아니고.
스파이더맨이 닥터 옥토퍼스와 공모해서 은행을 털다‚라는 신문의 기사는 이런 보통 인간의 시선을 반영한다.
히틀러나 박정희는 영웅도 아니고 악한도 아니다.영웅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 악한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들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경멸과 혐오감이다.그들은 언제나 대중을 필요로 했다.그래서 대중의 육체와 마음과 정신을 지배하고 조작하기 위해 안달했다.그들은 탁월한 대중 지배자이자 조작자였지만 결국은 추수자였다.그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했던 모든 것이 광기와 사욕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그렇지 않았을 것이다.히틀러는 자신이 독일과 게르만 민족을 위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박정희는 자신이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그들은 언제나 목적과 명분을 필요로 했다.세계를 위하고 대중을 위한다는 명분.허위를 자신에게 부여하고 믿었다.명분과 대의는 그들의 자기 최면제였다.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밀고 나갈 수 없었다.최면제 없이 운명을 감당조차 할 수 없었다.범인들이 자신들의 운명에 대한 책임을 영웅과 악한에게 떠넘기듯이 그들은 그 대의와 명분에 떠넘겨야만 했다.그들은 우리와 같은 범인들이었다.그들이 우리를 필요로 했고 우리가 그들을 필요로 했다.우리는 모두 단독자일 수 없었다.
현대의 통치자들은 모두 그러할 것이다.부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자신의 신의 전사라고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미국의 대중뿐일 것이다.그래서 테러리스트들을 욕하지 못하겠다.
3.
우리들의 시대에 영웅은 가능한가.마지막으로 남은,그러나 보잘것없는 영웅은 형태는 아버지일 것이다.전통적 가부장은 자신의 어려움은 물론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가정의 어려움을 가족 구성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는다.혼자서 알아서 해결한다.그는 단독자다.그럼에도 아버지에 대한 가족 구성원들의 신뢰와 존경은 절대적이다.그의 운명은 가족 전체의 운명이기 때문이다.그런 의미에서 아버지는 나의 영웅‚운운은 틀린 말도 아니다.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이 아버지,가부장도 사라져 간다.마지막 남은 소小영웅도 사라져 간다. 무리 보잘것없는 영웅이라도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는 없다.[대부] 삼부작은 이 마지막 영웅에 관한 영화다.god-father,신과 같은 아버지,영웅과 같은 아버지. 그 마지막 영웅의 몰락에 관한 영화다.
우리들의 시대는 영웅을 견뎌낼 수 없다.우리 평범한 인간들은 영웅을 견뎌낼 수 없다.민주주의는 영웅을 견뎌낼 수 없다.이 시대에 최상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우리 평범한 자들이고 우리의 평범한 삶이고 비천한 생존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여전히,오히려,신문이나 방송은 영웅들로 넘쳐 난다.범인들을 대변하는 미디어는 영웅들의 이야기로 넘쳐 난다.스포츠 스타,연예인,정치인,의로운 시민....이들은 우리의 시대에 전형적인 유사-영웅들이다.그 영웅들은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다.하루아침에 만들어지고 하루아침에 파멸해서 사라진다.그 영웅들을 만들고 파멸시키는 것은 미디어이고 그 미디어가 대변하는 대중,우리다.그들은 우리의 위안이고 희생양이다.우리의 비천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위안이고 비천함으로 인한 절망을 떠넘길 희생양이다.흔히 말한다.사람들은 영웅을 원한다‚.맞다.사람들이 원하는 영웅은 그들 삶의 밑씻개이자 희망과 절망을 받아내 줄 하수구다.이것이 우리들의 시대에 유일하게 가능한 영웅의 형식이다.영웅은 우리 평범한 자들을 위해서만,우리 안락한 삶의 찬양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
김훈은 천박하지 않은 영웅주의를 지닌 드문 소설가다.그는 자신의 영웅을 당대에서 찾을 수 없었다.이순신과 우륵을 과거에서 찾아야만 했다.앞으로 그는 당대의 이야기를 쓸 것이라고 한다.그가 영웅의 이야기를 쓸 수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그의 당대이자 우리의 당대,민주주의적 가치가 일반화된 시대에 영웅의 출현은 불가능하다.무엇보다 세계의 운명과 일치할 만큼 위대한 개별적 운명의 출현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이 시대는 그런 운명을 용납하지 않는다.세계의 변화와 운명은 우리 평범한 자들의,다수의 승인을 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다.다만 가능한 것은 단독자로서의 삶이다.지금의 대중사회에서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단독자로서의 개별적 인간은 세계의 운명을 짊어진다.그러나 그 세계는 자신의 세계다.개별적 인간은 세계를 위해 싸운다.그러나 그 세계는 또한 자신의 세계다.개별적 인간은 모두 자신의 세계를 갖는다.단독자로서의 인간은 단독적인 세계를 갖고 그 세계를 위해서 싸운다.그 세계는 작은 세계다.그러나 그 세계는 개별적 인간이 책임져야 할 세계고 책임질 수 있는 세계다.그의 전장이다.그 세계 속에서 우리는 삶에 대한 책임을 떠넘길 위대한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영웅도 필요로 하지 않고 희생양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작은 삶을 묵묵히 살아간다.우리는 영웅이 될 수 없다.그러나 각자의 세계,각자의 전장에서 영웅적으로 분투할 수는 있다.영웅은 불가능하다.가능한 것은 기껏해야,또는 아직도,평범한 인간의 영웅적인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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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2]영웅주의와 민주주의
